절망의 끝에서 세상을 보다, 「절망의 구」
2009/10/11 22:58

저자 김이환
(표지 이미지의 출처는 yes24)
어느날 모 도시에 나타난 검은 색의 구체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스스로 움직여가며 주위의 인간에게만 다가가 접촉, 흡수해 가는 검은 구체. 담배를 피러 밖으로 나간 남자는 그 구체에 사람이 흡수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최초로 그 구체를 목격한 남자는 그것을 본 후 정체모를 공포감과 함께 구체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한다. 주위에 구체의 위험성을 알리려 하지만 어디에도 보도된 바 없는 구의 존재로 인해 남자는 다시 혼란을 느끼게 되지만 사태는 다시 급변한다.
그간 2차원적으로밖에 이동하지 않았던 구체가 상하이동이 가능한 것이 알려지고, 더군다나 세포분열을 하듯 1개의 구체가 2개의 구체로 늘어나는 것이 목격된다. 어떤 첨단기술을 사용해도 파괴는 물론이고 저지조차 불가능한 구체의 존재에 세계는 절망에 빠진다.
한편 도주를 계속 하던 남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폭도로 변해버린 사람들과 만나 죽을 위기에 빠지기도 하며, 구체가 가까운 사람을 따라간다는 점에 착안해 구 주위에 같은 간격으로 둘러앉아 생활을 하는 어떤 단체와도 조우하여 며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 모두가 구체의 희생자가 되고 남자가 최종적으로 가게 된 곳은 폐허가 된 쇼핑센터. 그리고 그 곳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 구체가 가져다준 절망 아래 동거하게 된다.
세계에 대처 불가능한, 비상식적인 대 재앙이 찾아오고, 그것에 대처하는 인간군상들을 그려나간다는 점에서는 주제 사라마구 저 「눈먼 자들의 도시」와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더군다나 그 재앙에서 최종적으로 남게 되는 사람이 단 하나뿐인 것과, 찾아왔던 재앙이 아무런 개연성 없이 사라져버린다는 것 또한 지나치게 비슷하다. 둘 사이의 차이점을 찾아보라면 「절망의 구」는 재앙이 떠나간 사후에 더 무게가 실려있다는 것일까.
유일하게 구의 영향을 받지 않고 홀로 한달이라는 시간 넘게 살아왔던 남자에게 세상의 모든 관심이 쏠린다. 구체가 사라진 뒤에도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며 사람들을 피하며 숨어 살게 된다. 절망이 지나가고 새로운 미래가 있어야 할 종막부에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절망이 싹을 트게 된다. 각종 초법적 제재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주인공은 다시금 생명의 위기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줄곧 스스로 해왔던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 답을 던지고 '모두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던 그 군상에 스스로 몸을 던지게 되는 엔딩은 그래서 충격적이며, 책을 덮고서도 다시금 생각해보며 씁쓸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결국, 절망을 피해 달아나다가 절망에 몸을 던지게 된 격이기 때문일까.
Trackback Address:http://postlude.pe.kr/tc/trackback/3

